이전 글을 통해서 항우와 항우 휘하에 있던 장수들에 대해 알아보았고 또 다른 장수들에 대해 작성하려고 하는데 항우 아래 초나라 장수들의 기록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여러 인물들을 찾아보다가 진나라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항우에게 항복한 장한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글을 작성하려고 한다. 장한이란 인물은 진나라의 장군으로 진 제국 말기에서 일어난 반란들을 거의 종식시킬뻔한 명장으로 진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항우에게 항복하여 18 제후왕 중 옹왕으로 되었다.
원래 장한은 재정 부서의 관리를 하던 인물이었지만 이 시대에는 문관이 무관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업무를 보면서도 경우에 따라 군을 이끌 수 있었다. 진나라가 위기에 놓이자 간신인 조고는 장한을 불러 반란군을 토벌하게 하는데 진나라 세력이 부족하여서 부역을 하고 있는 죄수들을 사면하여 군대를 만들었다. 죄수들이었지만 장한의 뛰어난 통솔력 때문에 상대적으로 군기가 약해져있던 진승 오광의 장초군은 쉽게 격파당하였다. 장한은 그 후 전열을 가다듬고 반군토벌을 나서게 된다. 장한은 호해의 칙서를 위조하여 조나라의 무신을 파하였으며 제나라 전담 위나라 위구를 차례로 격파하여 승리하고 있었다. 제나라의 전영의 군대를 멸하기 위해 항량과 격돌하였는데 이때 대패를 당하였다. 이때 항량의 지휘관이 유방과 항우였기 때문인지 다음 전투에서도 또다시 지고 말았다. 하지만 장한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진 조정으로부터 추가병력을 많이 지원받았다. 반면 항량은 오만함에 빠져서 항우와 유방을 다른 곳으로 내돌렸고 장한은 항량을 기습하여 사망케 하였다. 그 후 조나라 공략에서는 거록에서 초의 군권을 장악한 항우에게 대패하게 되고 장한은 항우와 대치상태를 이루었는데 조정 내부에서 커져버린 장한을 숙청하고 군권을 장악하려 한다는 말을 사마흔에게 들은 장한은 공을 세워봤자 시기당하고 패배하면 죽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항우에게 20만 대군을 이끌고 항복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항우는 장한과 항복한 장수들만 살려두고 반란 방지라는 명목으로 신안대학살을 시전 한다. 항우는 범증의 진언에 따라 진나라 장수인 사마흔 동예와 함께 예전 진나라 영토를 셋으로 만들어 삼진왕 중 하나인 옹왕이 되었다. 하지만 진나라 사람들은 학살자 항우에 붙은 사람이라고 판단하여 민심을 전혀 얻지 못하였다. 그것은 사마흔 동예도 마찬가지였는데 당사자들은 억울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태였다. 거기에다가 자신들은 군사들이 모두 학살당하였고 항우가 땅까지 불태웠기 때문에 생산력과 경제력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분봉된 지 3달 만에 유방의 한군이 삼진을 격파하기 시작하는데 장한은 맞서 싸웠지만 한신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고 하지만 팽성대전 이후 9개월 이상 저항하였으나 한나라 군이 폐구를 수몰시켜서 위기에 닥치자 장한은 자살하고 만다. 사마흔 동예는 유방에게 항복해서 목숨을 한번 더 건지게 된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신안대학살의 공범처럼 여겨지는 장한을 유방이 받아들였으면 관중의 민심을 잃게 될 가능성이 커서 어쨌든 죽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장한을 평가해보면 진나라 최고이자 최후의 명장으로 여겨지나 주군 복이 없다고 평가된다. 조고 항우 둘 다 주군으로 훌륭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초나라 항복 전까지 대단한 명장으로 전공으로는 한신과 비슷할 정도였다고 한다. 진나라 말기의 대대적인 반란을 거의 잠재울뻔한 인물로 항우와 내부의 적인 조고만 없었다면 더 좋은 상황일 수 있었을 것이다. 말년에 항우의 신안대학살에 협조자처럼 누명을 쓰는 바람에 평가 절하되는 인물이다. 조정 내부에서의 일로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생각하면 원통한 일이다.
여기까지가 장한이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 였는데 글을 하나하나 작성할 때마다 초한지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다. 그전에는 초한지 인물이 워낙 많기도 하여 헷갈렸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글을 더 작성할 것이다.